연이은 지진, TSMC를 흔들다

2024년 4월 3일, 대만 동부 화롄(花蓮)에서 규모 7.2의 강진이 발생했음. 25년 만에 가장 강력한 지진이었음. 그리고 불과 8개월 뒤인 2024년 12월 26일, 다시 규모 6.4의 지진이 대만을 강타함. 2025년에도 12월 17일 규모 6.7의 지진이 발생하며 대만의 지진 리스크가 현실화되고 있음.
지진이 반도체 생산에 미치는 영향은 단순하지 않음. 건물이 무너지지 않아도 문제가 됨. 작업 중이던 웨이퍼는 미세한 진동에도 불량이 발생할 수 있어 전량 폐기하거나 정밀 검수를 거쳐야 함. 3nm, 2nm 같은 최첨단 공정에서는 원자 단위의 정밀도가 요구되는데, 지진으로 인한 진동은 치명적임. TSMC는 지진이 발생할 때마다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의 손실을 감수해야 함.
TSMC의 숨겨진 경쟁력, 저렴한 전기료
그동안 TSMC의 경쟁력은 단순히 기술력만이 아니었음. 저렴한 전기료가 핵심 무기 중 하나였음. 반도체 팹은 24시간 365일 가동되는 전력 집약적 산업임. TSMC는 연간 약 200억 kWh의 전력을 소비하는데, 이는 대만 전체 전력 소비량의 7%에 달함. 전기료가 1원만 올라도 연간 200억원의 비용 증가로 이어짐.
2016년만 해도 대만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한국보다 24% 저렴했음. 아래 표를 보면 그 격차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명확히 알 수 있음.
대만 vs 한국 산업용 전기요금 추이 (2016-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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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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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원/kW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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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원/kW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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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차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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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가격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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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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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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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3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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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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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 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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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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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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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7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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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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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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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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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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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7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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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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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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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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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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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3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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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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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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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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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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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3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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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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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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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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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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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3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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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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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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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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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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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5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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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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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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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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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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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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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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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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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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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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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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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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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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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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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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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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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원
|
8.7% 비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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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2025년까지 9년간 대만의 전기요금은 54.6% 인상된 반면, 한국은 7.2% 인상에 그쳤음. 2025년 4월, 드디어 역전이 일어남.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이 대만보다 저렴해진 것임.
엔비디아 CEO 젠슨 황도 이 문제를 언급한 바 있음. 2024년 3월 GTC(GPU Technology Conference)에서 그는 "TSMC의 가장 큰 리스크 중 하나는 에너지 비용 상승"이라고 지적했음. 그는 "대만이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면서 전력 비용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고, 이는 장기적으로 반도체 생산 비용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함. 엔비디아처럼 TSMC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전기료 상승이 곧 자사 제품의 원가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임.
대만의 에너지 딜레마: 원전도 못하고, 재생에너지도 못하고
대만의 전기요금이 급등한 이유는 명확함. 탈원전 정책 때문임. 과거 대만은 원전 비중이 높았음.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원전이 전체 발전량의 약 20-25%를 차지했음. 2014년에는 원전 비중이 18.3%였음. 저렴하고 안정적인 원전 덕분에 대만의 전기료는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음.
그러나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대만 내 반핵 여론이 들끓었음. 2016년 차이잉원 정부가 들어서면서 2025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한다는 '비핵가원(非核家園)' 정책을 추진함. 2018년 용먼(龍門) 제4원전 건설이 완전 중단됐고, 2021년 진산(金山) 제1원전, 2023년 구오성(國聖) 제2원전이 차례로 폐쇄됨. 2024년 기준 약 6%로 급감했고, 2025년 5월에 0%로 탈원점 됨.
문제는 대체 에너지원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임. 대만 정부는 재생에너지(태양광, 풍력)로 원전을 대체한다는 계획이었지만, 목표치에 한참 못 미치고 있음. 2025년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는 20%였지만, 2024년 실제 비중은 약 9%에 불과함. 대만은 국토 면적이 좁고 태풍이 잦아 태양광과 풍력 발전에 제약이 많음.
그렇다면 다시 원전으로 돌아가면 되지 않을까? 그게 안 됨. 이유가 바로 지진임. 대만은 환태평양 지진대에 위치해 있어 연간 수백 차례의 크고 작은 지진이 발생함. 원전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너무 큼. 후쿠시마 사고의 트라우마도 여전히 강력함. 정치적으로도 원전 재가동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임.
결국 대만은 LNG(액화천연가스) 발전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됨. 2024년 기준 대만의 LNG 발전 비중은 약 40%를 넘어섰음. 석탄(약 35%), 재생에너지(약 9%), 원전(약 6%)을 제치고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임.
LNG 가격의 미래, 대만에게는 악재
LNG 가격은 국제 에너지 시장의 변동성에 크게 영향을 받음. 2024년 글로벌 LNG 가격은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정세 불안 등으로 인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음. 2025년 이후 전망도 밝지 않음.
국제에너지기구(IEA)와 세계은행(World Bank)의 전망을 종합하면:
- 2025-2027년: LNG 가격은 높은 변동성 속에서 현재 수준(MMBtu당 $12-15) 유지 예상. 글로벌 경기 회복과 아시아 수요 증가로 하락 여력 제한적임.
- 2028-2030년: 미국과 카타르의 신규 LNG 수출 프로젝트가 가동되면서 일시적 가격 하락 가능성 있음. 그러나 탈탄소 정책으로 장기 계약 수요는 견조할 것임.
- 장기 추세: 2030년대 중반 이후에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수소경제 전환으로 LNG 수요가 감소하면서 가격이 안정화될 수 있음. 하지만 대만이 그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음.
대만 입장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임. 앞으로 최소 5년간은 높은 LNG 가격을 감당해야 함. 전기요금 추가 인상은 불가피함. 일부 전망에서는 2027년까지 대만의 산업용 전기요금이 현재보다 10-15% 더 오를 것으로 예측함. 그렇게 되면 대만의 전기요금은 한국보다 20% 이상 비싸질 수 있음.

TSMC 주요 비용 항목(추정)
한국의 강점: 안정적인 원전, 지진 안전지대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경쟁력이 빛을 발하고 있음. 한국은 2024년 기준 원전 비중이 약 30%를 유지하고 있음. 신한울 3·4호기가 2030년대 초반 가동을 목표로 건설 중이고, 추가 원전 건설 계획도 논의되고 있음. 원전은 발전 단가가 저렴하고 안정적이어서 산업용 전력 가격을 낮게 유지하는 데 결정적임.
게다가 한국은 지질학적으로 안정적임. 대만이나 일본과 달리 지진 발생 빈도가 매우 낮음. 규모 5.0 이상의 지진은 거의 발생하지 않음. 반도체 팹이 24시간 365일 멈추지 않고 가동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임.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와 SK하이닉스 이천·용인 클러스터는 지진 걱정 없이 최첨단 공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음.
글로벌 팹리스의 선택: 계란을 한 바구니에?
엔비디아, AMD, 애플, 퀄컴 같은 글로벌 팹리스 기업들은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음. TSMC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기 때문임. 엔비디아의 경우 AI 칩 물량 대부분을 TSMC에 의존하고 있는데, 지진이나 전력 문제로 대만 생산에 차질이 생기면 글로벌 AI 시장 전체가 타격을 받을 수 있음.
실제로 2024년 4월 지진 이후 엔비디아와 AMD는 삼성파운드리와 접촉을 강화한 것으로 알려짐. 애플도 일부 칩 물량을 삼성에서 생산하고 있음. 공급망 다변화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음.
한국 입장에서는 기회임. 삼성파운드리는 GAA(Gate-All-Around) 공정에서 TSMC를 추격하고 있고, 2nm 이하 공정에서는 오히려 앞서갈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음. 수율 문제로 신뢰를 잃었던 과거를 극복하고, 안정적인 생산 능력을 입증한다면 글로벌 팹리스 기업들의 물량을 끌어올 수 있음.
결론
TSMC의 독주 체제에 균열이 생기고, 글로벌 팹리스 기업들이 공급망 다변화를 본격화하는 지금이야말로 골든타임임. 삼성과 SK하이닉스가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향후 10년 글로벌 반도체 지형을 결정할 것임.
대만의 위기는 우연이 아님. 구조적 문제임. 그리고 한국의 기회도 우연이 아님. 오랜 준비와 투자의 결과임. 이제 선택은 글로벌 팹리스 기업들의 몫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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